THEME 역사력 - TOP5


96년 기업의 역사에 헛되고 소홀한 순간은 한순간도 없겠지만, 돌이켜 볼 때마다 짜릿한 감흥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삼양인이 뽑은 역사 속 명장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다섯 장면을 소개한다. 그날을 오늘처럼 생생하게 마주해 보자.



수당은 경성방직을 운영하면서도 고향인 봉암리 인촌마을을 자주 찾아 피폐해진 농민들의 생활을 살폈다. 그러면서 전남 장성군 남면 일대를 중심으로 농촌계몽활동에 나섰다. 소작농들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해 근대 영농법을 도입하고, 자력갱생하면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모범 농촌 만들기 운동을 벌였다. 그러면서 근대적 영농사업을 도입해 농민의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인근의 농토를 하나로 묶는 ‘농장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924년 10월 1일 수당은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의 장성농장 정미소에 '삼수사'의 현판을 내걸었다.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근대 기업 삼양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이다. 일제의 농업자본 침투에 맞서는 민족 농업자본을 형성하기 위해 수당은 장성농장에 이어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 등지에 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의 표본을 제시했다.

1931년 4월, 삼수사는 사명을 삼양사(三養社)로 변경했다. '삼양(三養)'은 중국 고서 『후청록』과 『군담채여록』에 나오는 구절로 '安分以養福(안분이양복) 寬胃以養氣(관위이양기) 省費以養財(생비이양재)'에서 비롯되었다. 그 뜻은 '분수를 지켜 복(福)을 기르고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기(氣)를 기르며 비용을 절약하여 재(財)를 기른다'는 것이었다.

1. 삼수사(三水社) 출범과 함께 개설된 장성농장(1924년)  2. 만주 시찰 무렵의 수당 김연수 회장(1921년)  3. 삼양사 사옥(1930년대)



삼양이 오늘날 국민 기업으로 자리잡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제당' 산업. 그 빛나는 역사가 시작된 곳이 바로 울산공장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삼양사는 부산으로 본사를 옮겼다. 수당은 당시 농업을 기반으로 사업을 펼쳤던 삼양사에 시대를 앞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사업 구상에 몰두했다.
그것이 바로 '설탕'이다. 당시 설탕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고, 일부는 미군부대를 통해 유통돼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 만큼 귀한 존재였다. 이에 수당은 원료당을 수입한 다음 국내에서 정제해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설탕을 대중화하는 것은 물론 약 15%의 외화 절감까지 가능한 아이디어였다.

사업 구상이 끝난 후 수당은 공장 부지 물색에 들어갔다. 제당 공장은 일반 제조공장과는 다른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풍부한 냉각수가 있어야 하고, 원당 수입을 위해서는 대형 선박 접안 시설이 필요했다. 또 제조된 설탕을 원활하게 유통하려면 교통 여건도 감안해야 했다.  
당시 울산은 개발되지 않은 전형적인 어촌이었다. 수당은 "기업은 100년을 내다봐야 하고, 한 공장을 세우려면 적어도 30년 앞을 짚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울산을 따를 만한 땅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닷가 야산을 헐어 메운 땅에 제당공장을 건립했다. 공장을 세우면서 수당은 머지않아 이 지역에 공업단지가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후 1962년 1월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울산에 공업단지를 조성했다. 수당의 혜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초창기 울산공장 전경(1960년대)



'가격 부담이 적으면서 숙취 해소가 확실한 제품은 없을까?'라는 삼양사 식품연구소의 고민에서 국민 숙취해소제 개발은 시작됐다. 휴대가 간편하고 빠른 숙취해소가 가능한 제형과 원료에 대한 연구 끝에 2013년 11월, 큐원 상쾌환이 출시됐다. 

당시 숙취해소제 시장은 연간 약 2000억원 규모로 5년간 연평균 19%의 성장률을 지닌 큰 시장이었는데, 개발 당시에는 음료 형태의 3개 제품이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
삼양사는 진입 문턱이 높은 숙취해소제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기존의 음료 제형을 환 형태로 바꾸고, 1회분 개별 포장으로 휴대성을 높였으며, 무엇보다 숙취해소 효과가 뛰어난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 덕분에 상쾌환은 사단법인 한국마케팅협회가 주최한 '2018 브랜드 고객만족도(BCSI) 대상', '2019 브랜드 고객만족도(BCSI) 대상'에서 숙취해소 제품 부문 2년 연속 1위에 선정됐다. 누적 판매량 기준으로 2017년 11월 1000만 포 판매에 이어 2018년 10월 3000만 포를 돌파하며 2016년 대비 2018년 판매량이 약 8.5배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9년 6월에는 누적 판매량 5000만 포를 넘어섰다.  

1. 2015년부터 상쾌환 모델로 인연을 맺은 혜리  2. 상쾌환 탄생(2013년)  3. 새롭게 출시한 상쾌환 스틱형(2019년)



1987년 처음 생분해성 봉합사 개발을 시작한 삼양은 섬유 고분자 합성, 중합 및 방사기술을 활용해 마침내 1993년 자체적으로 수술용 생분해성 봉합사 개발에 성공한다. 생분해성 봉합사 분야에서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확보한 결과 1996년 멀티 필라멘트 생분해성 봉합사 개발에 성공한다.
멀티 필라멘트 생분해성 봉합사는 인체 내에서 완벽하게 분해되는 제품으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삼양이 직접 개발에 성공하고, '트리소브'란 상표명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 삼양바이오팜은 40여 개국 190개 이상의 기업에 약 4000만 달러 규모의 원사를 수출해 글로벌 원사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생분해성 봉합사 기술로 개발한 미용성형용 리프팅 실 '크로키', 수술용 바이오 소재 등은 미래 성장 동력이다. 

1. 삼양바이오팜의 '트리소브'(1993년)  2. 미용성형용 리프팅 실 '크로키' 



2016년 판교 테크노밸리에 삼양디스커버리센터가 둥지를 틀었다. 삼양디스커버리센터는 식품과 의약바이오 부문의 연구원과 마케팅 인력이 긴밀하게 소통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는 R&D센터다.

주변 환경을 고려한 친환경 건축을 통해 '삼양다움'을 표현한 삼양디스커버리센터는 지상 9층, 지하 6층 규모로 지어졌다. 건물 외관은 삼양정신의 신뢰성과 역사성을 담아 감싼다는 의미에서 전통적인 보자기를 모티브로 삼았고, 내부는 자연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삼양디스커버리센터는 층마다 코너를 활용한 특색 있는 소통 공간과 삼양 제품을 시연할 수 있는 푸드랩 등 내·외부 소통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었다. 이 외에도 어린이집, 피트니스센터, 뮤직라운지, 옥상정원 등의 다양한 복리후생 시설을 갖춰 업무 몰입도를 높였다.

1. 삼양디스커버리센터 전경   2. 삼양디스커버리센터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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