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통신 - 요즘 우리





세상은 수차례 팬데믹을 겪으며 새롭게 재편됐다. 찬란했던 로마제국과 잉카문명도 팬데믹으로 사라졌지만 인류는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세계를 뒤흔든 전염병의 역사를 함께 알아보자. 


글 김성숙 


로마제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이유 중 하나가 ‘안토니누스 역병’이다. 로마를 최전성기로 이끌었던 안토니누스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병은 165년에 발병해 15년 동안 계속되면서 500만~1800만 명이 사망했다. 황제도 이 역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작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돌아온 로마군이었다. 하지만 역병이 창궐하자 기독교인들이 올림포스 신의 노여움을 산 탓이라고 매도하고 박해했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이용해 부적을 팔아 부를 쌓는 상인도 나타났다.    

처음에 온몸에 작고 붉은 반점이 나타난 후 다른 증상이 심해지는 이 병이 발진티푸스인지, 홍역인지, 천연두인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역병은 북쪽으로는 라인강, 서쪽으로는 대서양 해안, 동쪽으로는 인도와 중국까지 번졌다. 역병이 절정일 때 로마에서만 하루에 2000명이 사망했다. 중국 문헌에도 161~162년 서북부 변경에서 유목민과 싸우는 군대에 정체 모를 역병이 돌아 병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중세시대 7000만~2억 명의 사망자를 낸 페스트의 원인은 쥐벼룩에 붙어 사는 ‘페스트균’. 유럽군이 흑해의 카파에서 몽골제국 군사와 싸우며 전파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이탈리아 상인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당시 노동인구가 급감하면서 임금이 서너 배로 올랐고, 소작농을 구하지 못한 영세한 영주들은 줄줄이 파산하면서 중세시대는 기울고 결국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구텐베르크가 사람 대신 기계가 인쇄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도 이때다. 

사람들은 유대인이 우물에 역병을 풀었다며 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아름다웠던 도시들이 공동묘지로 변했고, 병든 가족이나 친척을 남겨두고 도망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했다. 

당시 의사들은 밀랍 바른 옷을 입고 새 가면을 쓰고 다녀 ‘부리 의사’라고 불리며 개구리 치료법이나 무화과와 양파 치료법을 썼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과학적인 치료법을 제시한 사람은 노스트라다무스였다. 더러워진 리넨 버리기, 물 끓여 마시기, 비타민C가 풍부한 장미 약 먹기 등을 제시한 것이다.


전염병 용어






팬데믹(pandemic):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것으로 2개 대륙 이상에서 확산함.

에피데믹(epidemic): 한 국가나 대륙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국지적인 유행.

신데믹(syndemic): 두 개 이상의 질병이 결합해 퍼지는 전염병.

엔데믹(endemic): 지역 내 감염원에 의해 확산되는 풍토병.

역병(plague): 전염병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지만 주로 유럽에 유행했던 선(腺)페스트(bubonic plague·흑사병, 가래톳페스트)를 가리킴. 






두창, 마마라고 불리는 천연두는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공식적으로 박멸을 선언하기까지 3억~5억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집트 왕 람세스 5세, 프랑스 루이 15세, 청나라 순치황제 등 수많은 통치자도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다. 중남미 대륙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이 무너진 원인도 바로 천연두였다. 

1519년 스페인 군대는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한다. 그리고 천연두를 앓고 있는 흑인 노예를 통해 균을 퍼뜨렸다. 면역력을 가진 유럽인과 싸운 아즈텍 원주민의 90%는 사망했고,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됐다. 

천연두 예방법을 발견한 사람은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다. 1796년, 그는 목동이나 우유를 짜는 이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 천연두 예방법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약용이 제너의 우두법을 소개했지만 서양 문물을 배척해 활용되지 못했다. 이후 1867년 지석영에 의해 종두법이 보급되면서 천연두 환자를 살릴 수 있게 됐다.  


20세기 최악의 전염병인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과 연관이 깊다. 전쟁 중인 1918년, 언론 통제가 심했던 여느 국가와 달리, 전쟁 중립국인 스페인이 전염병 상황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게 됐다. 사망자는 5000만~1억 명에 달했다.  

환자는 미국 캔자스주 미군 훈련소에서 처음 보고됐다. 이후 미국 필라델피아 해군으로 확산됐고, 대규모 퍼레이드로 인해 빠르게 전염됐다. 한 달 동안 필라델피아에서만 1만1000명이 죽었다. 썩어가는 시체를 수거하는 마차가 줄을 이었고, 관이 부족해 관을 훔치는 사람도 생겨났다. 1918년 10월에는 25만 명의 미군이 수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독감은 스페인과 영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침 뱉기는 죽음이다’라는 현수막이 등장했고, 침을 뱉은 사람은 체포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민간요법을 더 신뢰했고, 위스키를 처방하는 의사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오년 독감으로 기록됐고, 당시 인구의 약 38%인 288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968년 7월, 홍콩에서 발생한 홍콩 독감은 6개월 만에 베트남,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남미, 유럽으로 확산됐다. 공식 명칭은 바이러스 H3N2로 전염성이 매우 강해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감염되면 4~5일, 길면 2주간 증상이 지속되고 오한, 발열, 근육통, 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비말(침)에 의해 감염되는 특징으로 인해 환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홍콩 병원은 마비됐고, 홍콩 공공서비스와 산업도 멈춰섰다. 전화국과 전력회사 직원 3분의 2가 독감에 걸려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했다. 

홍콩 독감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군인들을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홍콩 독감은 2014~2015년 다시 유행해 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바이러스 내 유전자 변이가 잘 일어나고 전염성이 강해 겨울철마다 다시 유행하고 있다.